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린 밀수 사건 (문단 편집) == 경과 == 사실 사건 발생 당시엔 언론이 눈치채지 못해 묻힌 사건이었는데 몇 개월 후인 9월 15일 [[경향신문]]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9150032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9-15&officeId=00032&pageNo=3&printNo=6437&publishType=00020|폭로]]를 통해 드러나자 민심이 들끓었고 부산 [[세관]]은 급히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000만 원을 부과했다. 이때의 소동에 대해 <호암자전>과 <묻어둔 이야기>는 모두 "정치자금 등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의 결과"라고 보았다. 군사정권 내부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쪽이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사카린 밀수 사건'을 언론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의 여파로 [[국회]]에서도 뒤집어졌다. 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등은 물론이고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까지 정부의 모르쇠와 삼성 비호를 비판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관련자 전원 구속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1966년 9월 22일 국회의원 [[김두한]]이 이 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 도중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등의 각료를 향해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 실제로 이 말을 날린 다음 똥물을 투척했다고 한다. 관련 영상에선 7분 47초 쯤에 나온다.]라는 일갈을 날리면서 [[똥|인분]]을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정일권 총리를 비롯한 내각은 [[내각총사퇴|총사퇴]]를 선언했고 김두한 본인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 [[서대문형무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기타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문서 참조. 이때 박정희 정권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몹시 좋지 않은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김두한]] 의원에게 화살을 돌려 여론을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대다수 여론은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긴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정말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론이 정부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고 김두한을 칭찬하는 쪽으로 기울자 [[신민당(1967년)|신민당]]은 쾌재를 부르면서 김두한을 옹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김두한을 직접 신민당으로 영입까지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